안친오름
<<안친오름>>
• 아친악, 아진오름, 좌악, 좌치악
•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880-1
• 표고 192m, 비고 22m, 둘레 924m, 면적 46,443m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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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오름 여섯 곳을 다녀왔다고 하면, 체력이 대단하다고, 부담스리워서 나랑 같이 다니기 힘들겠다고 했던 지인들에게 고백할 것이 있다. 그 중에는 오름은 오름인데 그냥 평지같은 느낌의 오름도 있었다. 안친오름에 올랐을 때가 그랬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올라가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이거 잘못 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오름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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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오름의 높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즐겼다. 안친오름의 모나지 않은 완만한 곡선은, 화려하지 않아도 편안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 주었다. 처음부터 이런 미학적 기준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네모 반듯,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사각형 타일들이 가득한 욕실 벽을 보고 있는 것을 좋아했다. 직사각형으로 잘 짜 맞춰진 거실 바닥, 차곡차곡 장르별 크기별로 줄 세워진 책들처럼 각이 지고 합이 맞아야만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규칙적이지 않은 선들을 눈으로 따라가며 편안함
을 느끼기 시작했다. 안친오름과 하늘의 경계가 보여주는 부드러운 선들을 보며 진정한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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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친오름을 다녀온 지 한 달 만에 다시 찾아갔다. 같은 오름을 여러 번 오르는 이유는 계절에 따라, 또 오르는 시간에 따라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송당의 숙소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도로에서 흙길로 들어서며 자전거에서 내려 몇 발짝 걷지 않고도 오름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오름의 진입로가 농사를 위해 밭으로 개간된 것을 보고 한참을 말없이 보다가 돌이왔다. 어쩔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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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이 아주 오래 전부터 제주도민들에게 생활 터전의 일부였음을 잠시 잊고 있었다. 당근이 자라고. 소들이 풀을 뜯고, 묘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삶에 잠시 발을 들이고 엿보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안친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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