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좌읍

안친오름

오름꾼윤정씨 2023. 10. 18. 14:38

<<안친오름>>
• 아친악, 아진오름, 좌악, 좌치악
•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880-1
• 표고 192m, 비고 22m, 둘레 924m, 면적 46,443m²

가을, 안친오름의 드론사진

하루에 오름 여섯 곳을 다녀왔다고 하면, 체력이 대단하다고, 부담스리워서 나랑 같이 다니기 힘들겠다고 했던 지인들에게 고백할 것이 있다. 그 중에는 오름은 오름인데 그냥 평지같은 느낌의 오름도 있었다. 안친오름에 올랐을 때가 그랬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올라가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 이거 잘못 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오름의 가장 높은 곳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아름다운 능선을 자랑하는 안친오름

내게 오름의 높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높으면 높은 대로, 낮으면 낮은 대로 즐겼다. 안친오름의 모나지 않은 완만한 곡선은, 화려하지 않아도 편안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 주었다. 처음부터 이런 미학적 기준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나는 어릴 적부터 네모 반듯,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정사각형 타일들이 가득한 욕실 벽을 보고 있는 것을 좋아했다. 직사각형으로 잘 짜 맞춰진 거실 바닥, 차곡차곡 장르별 크기별로 줄 세워진 책들처럼 각이 지고 합이 맞아야만 아름답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점점 규칙적이지 않은 선들을 눈으로 따라가며 편안함
을 느끼기 시작했다. 안친오름과 하늘의 경계가 보여주는 부드러운 선들을 보며 진정한 자연스러움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안친오름을 다녀온 지 한 달 만에 다시 찾아갔다. 같은 오름을 여러 번 오르는 이유는 계절에 따라, 또 오르는 시간에 따라 느낌이 다르기 때문이다. 송당의 숙소와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자전거를 타고 달렸다. 도로에서 흙길로 들어서며 자전거에서 내려 몇 발짝 걷지 않고도 오름이 달라졌음을 알 수 있었다. 오름의 진입로가 농사를 위해 밭으로 개간된 것을 보고 한참을 말없이 보다가 돌이왔다. 어쩔 수 없었다.

여름, 초록으로 덮인 안친오름

오름이 아주 오래 전부터 제주도민들에게 생활 터전의 일부였음을 잠시 잊고 있었다. 당근이 자라고. 소들이 풀을 뜯고, 묘가 생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의 삶에 잠시 발을 들이고 엿보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안친오름

지도위에서 위치를 확인하세요

map.kakao.com